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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결혼 정보 회사 이선화 대표

[S CASA 뉴욕 스토리] 가정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사명감으로 사업을 하다

시대의 바뀜에 따라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젊은 세대의 경제난과 전통적인 개념에 대한 이들의 반감이 보태지면서, 이전에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결혼과 가정이라는 개념도 점차 퇴색되어 간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을 넘어 심지어는 가급적 결혼을 피하겠다는 비혼주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도 절실하고 능력도 갖추었지만, 인연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는 미혼 남녀들도 여전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조지아 애틀랜타에 본부를 분 결혼정보회사 ‘커플스(Couples)’의 이선화 대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결혼을 인륜지대사로 여기는 보수적, 전통적 사고의 소유자라고 소개한다. “2세들에게 도움을 주고, 한인 커뮤니티의 올바른 가정 문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강조하는 이 대표는 그 자신이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 명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동부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뉴욕과 뉴저지를 찾은 이선화 대표와 남편 임창원 씨를 만났다. 남편 역시 애틀랜타를 기반으로 200여 개의 프랜차이즈 업체 ‘아메리칸 델리’를 운영하는 성공적인 사업가다.

20년 차 부부인 두 사람에게서 처음 받은 인상은 무척 사이가 좋은부부라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10년, 20년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주는 커플은 흔치 않다. 사이가 나쁘다는 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치 친구 같은 편안함이나 담담한 정도의 느낌이 대부분이다. 남편을 어떻게 만나고 결혼까지 했냐는 질문에 이선화 대표는 “원래 여군이 되고 싶었다”라는 엉뚱해 보이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여군장교가 꿈이었어요. 공부와 운동, 인성 등 좋은 군인이 갖춰야 할 덕목을 키우며 모범생으로 살았고 결혼도 군인과 한다는 계획도 있었지요. 대학 시절에도 군인하고만 하고 소개팅을 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졸업할 때쯤 역시 당시 군인이던 남편을 만났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생길 때까지만 사귀자 하는 부담 없는 만남이었어요. 군인들은 다 형제, 자매 같았거든요 (웃음). 그런데 저의 그런 편안한 모습이 남편에게는 ‘이 여자다’라는 확신이 들게 했다는군요. 늘 따뜻하고 자상하게 저를 대해주었어요. 3년쯤 지나고 나니까 저 역시 ‘이 사람 버리면 벌 받겠다’는 생각이들더라고요. 적어도 굶기지 않을 책임감도 있어 보이고요. 결심이서고 나서 제가 바로 결혼 날짜 잡고 하자고 했지요. 제 인생에서 제일 큰 행운은 남편을 선택한 것이라고 변함없이 믿고 있습니다.

▲사연을 듣고 나니 군인이 오랜 꿈이었던 대표님 부부가 미국에 온 이유가 더 궁금해집니다.

결혼한 지 두 달쯤 후였어요. 20년 전이죠. 남편의 외삼촌께서 미국에서 사업을 하시는데 굉장히 성공하셨고 그분이 우리를 보고 싶다는 말씀을 들었지요. 미국이 어떤 곳이고 그분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본적으로는 군인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해야겠죠. 중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12년을 준비했던 장교의 꿈이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면서 정말로 낙담했어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육군참모총장에게 장문의 편지와 혈서를 보내면서 저의 억울함을 호소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군대에 못 가면서 “나를 알아주는 않는 이 조국을 나는떠날 것이다” 한 말이 씨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미국에 와서 무난히 정착한 편인가요? 그래도 성공한 시댁 친척이 있어서 큰 고생은 안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민 고생 안 한 분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한 고생은 다른 분들에게 비하면 별 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추억들이 있긴 하죠. 미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부터 시댁 이모님 델리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남이 아니니까 오히려 다른직원들보다 자발적으로 더 많이 일했죠. 아침 7시 30분 출근해서 10시에 마무리까지 하고 돌아오면 바로 곯아떨어지게 힘들었어요. 그렇게 4개월이 지나니까 허리가 망가지더군요. 하루는 아침에 세수하려고 하는데 허리가 너무 아프고 구부러지지 않는 거예요. 남편에게 사정했지요. “당신이 이모한테 얘기해줘서 하루만 쉬면 안될까요?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요”라고. 그런데 평소에 자상하기 그지없던 남편이 그러더군요. “죽어도 거기서 죽읍시다.”

커플스 미주 결혼정보회사ㅣ
커플스 미주 결혼정보회사ㅣ
▲사뭇 비장한 이야기군요. 그렇게 열심히 일한 노고를 이모님도 알아주셨을 것 같아요.

그날 점심 장사까지 아픈 티 안 내고 이를 악물고 했지요. 이모님 보다는 남편이 더 신경 쓰였어요. 남편은 이모님이 알아서 빼 주실걸 기대했는데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생각인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일하더라고요. 이러다가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지겠다 싶어 용기를 내서 이모님에게 갔어요. 그런데 그분 얼굴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나는 거예요. 왜 그렇게 눈치가 보이고 주눅이 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때는 죽으면 죽으라는 시늉을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우리 때문에 폐가 되면 안 되잖아요. 그런 노력이 결국 빠른 이민 생활 정착과 안식을 주었지요.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픈 것이 더 힘든 법이다. 이선화 대표가 이민 와서 가장 아팠던 것은 델리에서의 노동이 아니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을 때다. 아직 신분이 해결이 안 된 시기라 귀국이 어려웠다. 임종 직전 조금의 의식이 남았을 때 그의 오빠가 전화기를 어머니의 귀에 대주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울면서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그녀는 이민 생활의 깊은 회의도 느꼈다. 어머니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는 오빠의 말을 들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 대표는 “누구나 다 겪는 일인데 고생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부끄럽다” 면서 “고생이라는 것보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나는 인생의 장면이라고 하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미국에서 한인들이 진출하는 여러 비즈니스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이하게 결혼정보업체를 선택하신 이유는?

군인의 꿈이 좌절된 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했어요. 나중에는 웨딩 매니저로 수년간
의 경험이 있었지요. 미국에 온 뒤 몇 년간은 먹고 사는 일에만 파묻혀 살다가 비즈니스가 착실히 성장한 뒤 나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2013년 성혼업체 ‘커플스’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남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커플 매니저라는 직업이 수익이 많은 직업이 전혀 아니에요. 돈만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회사를 접고 남편 비즈니스를 돕는 것이 더 현실적이겠지만 그렇게 살아보니 행복하지 않았어요.

▲결혼정보업체 운영을 하면서 본인이 그 분야에 관심과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속에서 그들 자신도 몰랐던 강점을 찾아주고 용기를 북돋는 일을 잘하더라고요. 저는 또한 굉장히 긍정적이 사람이거든요. 언어도 긍정적 단어를많이 쓰는 편이고요. 사람들에게 열정과 긍정성을 주고 나면 저 자신이 또한 그 에너지를 받아 성장하는 걸 느껴요. 일하면서 이게 나의 천직이라고 많이 깨닫게 되었죠. 그리고 커플 매니저를 하면서 남들이 들으면 기겁할 스트레스 받는 일들이 저에게는 하나도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고객의 필요를 금방 알아차리죠. 또 저는 일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맺는 습관이 있더라고요. 혹시 실수가 있다면 변명하지 않고 그 실수를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마무리 짓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요.

커플스 미주 결혼정보회사
▲남편 임창원 대표님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도 간단하게 소개를 해주시죠

애틀랜타에서 아메리칸 델리라는 요식업으로 성공을 둔 시댁 외삼촌의 매장에서 일하면서 비즈니스를 배웠어요. 이민 당시 가까운 친척들이 운영하면서 5개의 매장이 있었죠. 물론 밑바닥부터 배우면서 일을 시작했고 남편은 남미 직원들보다 오히려 덜 받으면서도 정말 열심히 일을 배웠어요. 남부 지역 입맛에 맞게 개발한 각종 소스를 입힌 치킨 윙을 비롯해 샌드위치, 샐러드, 필리 스테이크를 제공하는 패스트푸드와 레스토랑의 중간적 마켓 레스토랑 개념이고 현재는 200개 정도의 프랜차이즈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커플스>를 통해 맺어준 사례자 중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면요?

정말 까다로운 남, 여회원이 있었어요. 남성은 만나는 여성마다 마음에 들지 않더니 회원 탈퇴하겠다 했고, 여성분도 깐깐한 성격에다 자존감이 약한 분이라 상처를 받을까 늘 걱정이었지요. 그 두분을 만나게 해줬어요. 두 분은 만나고 헤어지기를 수차례 하면서 커플 매니저를 힘들게 하더니 결국은 헤어지기로 했다고 했어요. 바로 그 시기에 ‘커플스’가 ‘스타강사 김미경’ 강연을 주관했는데 김미경 선생님이 강연 후 그 두 사람을 면담한 거예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남성이 용기 있게 다시 연락하고 결혼식을 예쁘게 올렸지요. 인연이란 참 대단하고 묘한 인생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 이란 무엇인가요?

한쪽만 잘해서는 인간관계 형성에서 균형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결혼 관계를 잘 유지했다면 그건 양쪽에서 그 노력을 했을 겁니다. 누가 조금 더하고 덜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 양도 너무 차이가 나서 기울어지다 보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어요. 각자 자기코드에 맞는 부류가 있어요. 억지로 끼어 맞출 필요 없이 나한테 딱 맞는 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편안함이 있어요. 그 편안함 속에는 만족감 100%는 없어요. 그저 이만하면 됐다 싶고 부족해도 어느 정도 채워줄 정도만 되면 그게 정말 이상적인 만남과 결혼이라 생각합니다.

▲<커플스>의 주 고객은 한인 2세들입니다. 이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는 것이 정말 힘든가요? 그렇다면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착하고 바른 2세들이, 고생한 부모들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했는데 막상 자기에게 걸맞은 인연을 찾는 방법이나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안타까운 경우도 적지 않죠. 언어와 문화, 환경의 차이 등을 극복하고 비슷한 환경과 소통 가능한 배우자를 찾는다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2세들에게 좋은 인연을 찾아주는 것이 우리 커뮤니티를 위한 사업이라는 사명감이 있어요. 과학적인 데이터베이스와 매칭 전문가를 통해 시간과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선화 대표와 인터뷰하면서 그가 막스 베버(Max Weber)적인 윤리적인 직업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 나라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군인이 되고 싶었던, 특이하게 보수적이고 전통적 사고를 했던 소녀가 결혼하고 이민 생활을 거치면서 이제 커플 매니저라는 직업을 통해 사명감을 실천하고 있다. 철저한 자기 관리 역시 커플 매니저의 중요한 덕목이다. 바쁜 와중에 꼭 하루는 시간을 내서 독서를 하고 석 달에 한 번은 여행을 통해 충전한다. 무엇보다 가정을 더 소중하게 여기려 노력한다. “내 가정은 엉망이면서 나의 가정을 만들어 주려는 것 자체가 모순과 위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표는 ‘커플스’를 운영하면서 가정이 더 단단해지고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하는 일을 통해 깨닫고 반성하다 보니 저 자신이 성장합니다. 돈도 벌면서 내 가정이 더 행복해지고 성장하니까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글, 사진 : Won Young Park
정리 : S.CASA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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